광장이 된 길, 길이 된 광장; 하나 된 도시
현황: 지금, 여기 서울의 구조
1. 광장의 도시 vs 길의 도시
도시를 분류하는 기준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겠으나, 바탕이되는 외부공간의 형태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도시는 크게 광장의 도시와 길의 도시로 나뉠 것이다.
광장의 도시가 자신의 길, 상징적 공간, 외부 공공공간 등의 요소를 광장으로 수렴하고, 다시 광장으로부터 발산한다면, 길의 도시는 자신의 요소들을 수렴발산함 없이 가로망의 체계 속에서 균질 혹은 비균질 하게 분산하며 연결한다. 둘의 작동은 서로 다른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한다.
2. 길의 도시 서울
서울은 길의 도시다. 600년 전 탄생부터 신도읍으로서 중심가로 계획을 바탕으로 도시가 구성되었고, 100년 전 근대화의 기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당시 도입한 그리드체계의 흔적들-기존 길의 확장·축선화와 신규 동서축의 추가-이며, 오늘날 메가시티 서울의 팽창을 뒷받침 한 것은 이지역과 저지역-기능주의적으로 분할 된 용도지구-들 사이를 빠르게 잇는 차도이다.
3. 현대 도시 서울
한편, 오늘날 서울의 모습은 다시 변화하고 있다. 빠르게 지나치는 것이 목적이었던 길들에 다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된 모바일기기를 든 사람들은, 비어있던 공터 새로 선 조형물 앞- I.SEOUL.U.같은 곳에서 순서를 기다려 사진을 찍고,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주위를 배회한다.
첨단의 모바일 기술은 도시의 인프라 공간에서 기능을 분리해 나가고있다.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의자는 이제 버스도착 예정시간을 알리는 모바일정보시스템에 의해 집안의 의자로 대체되었다. 대로변의 빌보드의 광고는 모바일 앱의 팝업창으로 자리를 옮긴다. 소셜 미디어와 모바일 지도서비스는 골목의 후미진 밥집의 위치를 마치 대로변과 같이 드러난 자리로 탈바꿈 한다. 그리고 기능이 분리된 자리에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채우고자 하는 활동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네의 범위에서는 ‘골목’을 통해, 도심의 범위에서는 ‘광장’이라는 그림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4. 지금 서울을 위한 ‘광장’ 번안
그렇다면 길의 도시에서 그리는 광장은 무엇일까? ‘광장의 도시’의 광장과 같이, 상징적 시설과 함께 가로망의 중심에 위치하여 의미적으로나 형태적으로 모두 도시를 엮어내는 중심공간? 인상적인 경관을 갖춘 도시의 중심 되는 넓은 공터?
길의 도시-서울-를 위해 번안한 ‘광장’을 제안한다. 본 제안은 지금 서울에서 ‘광장’의 논의가, 길의 도시로서 서울의 구조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길을 채우고자 하는-광장이 아닌 광장과 ‘같은’공간의-필요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제안은 길에서 출발하여, 길을 채우는 광장을 만들고, 다시 광장으로부터 본래 도시의 가로망 속으로 돌아온다. 길은 광장이 되고, 광장은 다시 길이 되어야 한다.
제안: 광장이 된 길
5. 전략
길이 ‘광장’이 되기 위한 몇가지 필수요건들을 꼽아본다. 그것은 가로체계의 중심과 같이 도심의 길들과 긴밀히 소통 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할 것, 서로 소통 가능한 건물·시설과 면하여 다양한 활기를 서로에게 불어넣을 것, 적정한 위요와 세장비 등 멈추어 점유할 만한 스케일을 갖춘 공간 일 것, 보행 친화적인 공간 일 것의 4가지다. 본 제안은, 도심 가로망을 엮는 중심인 세종대로의 인도 공간을 최대한으로 넓히는 제스쳐를 바탕으로, 세종대로를 서울 식 ‘광장’으로 조성한다.
6. 범위
제안이 직접 다루는 범위는 기존 사이트에서 확대된, 주요시설물-서울역, 광화문-들에 의해 경계지어진, 세종대로 전체이다. 총 길이 2.2km, 시청을 기준으로 도보 15분 안팎의 범위. 이때, 세종대로는 고궁, 시청, 천변 등 광장의 도시라면 광장변에 자리할 다양한 상징적인 시설들과 접하며, 서울도심의 모든 주요한 동서길과 만나는 서울도심가로망을 구성하는 중추이다.
7. 인도 공간 확장, 차도 공간 조정
가로 내 인도의 영역을 최대한 넓힌다.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끝선을 일정하게 맞추어 제안범위 전체의 인도 폭을 넓힌다. 인도의 폭은 각 블록의 현황에 따라 기존보다 9~24m까지 확장되며, 이 때, 제안범위 내 다수 블록의 인도 공간은 1:1~1:3의 세장비를 확보하게 된다. 이는 길의 단일한 방향성·속도감을 흩뜨려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도록 한다. 경험자에게 길과 광장의 모두로 인식되는 공간.
8. 길과의 만남, 건물과의 만남
넓어진 세종대로는 동서의 길들과 특별하게 만난다. 기존의 골목 안에서 세종대로 편을 바라볼 때에는 길의 끝은 마치 벽이 세워진 듯 차도의 아스팔트와 달리는 차들로 채워진다. 넓힌 공간으로 골목의 끝, 세종대로와 동서길이 만나는 모든 결절점들을 소광장으로 채운다. 광장은 건물과 만난다. 랜드마크 전면의 완충공간이거나, 작은 상점의 테라스처럼 건물이 도시로 쏟아져 나오는 공간으로서, 다른이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축제와 시위처럼 도시가 건물까지 쏟아져 나오는 공간으로서, 광장은 유연할 수 있는 넉넉한 두께로 건물과 만난다. 제안의 확장은 길에 면한 건물의 폭원, 높이 이상의 넉넉함을 인도에 확보한다. 넓어진 인도는 모든 건물의 마당인 동시에 독립적으로 도시에 속한 모두의 넓은 공간-광장-이다.
9. 수목식재
수목을 식재하여 공간에서의 쾌적한 보행과 점유를 돕는다. 차도변 그리고 인도의 중간중간에 심긴 가로수(수고15m이상)는 넓어진 인도 공간을 적정 스케일로 분할하고, 공간에 적당한 위요를 더하며, 위치에 따라서는 하나의 오브제로서 기능한다. 기존의 배 이상 넓어진 인도는 서울의 부족한 녹지를 보충하는 식재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의미 및 기대: 길이 된 광장
10. 연결하는 광장
‘광장’이 된 길은 다시 본래 길의 역할을 살려 도심 곳곳을 연결한다. 광장을 따라 혹은 광장으로 다시 또는 광장을 경유하여 소요하듯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연결하고, 사람을 따라 길과 길을 중계하고, 도시의 블록과 블록을 연결한다.
11. 도심을 둘러싼 주요길 연결
‘광장’은 다른 주요 보행로들과 만나 서울 도심 속을 한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을 완성한다: 서쪽 세종대로~북쪽 주미대사관을 돌아 인사동과 익선동을 지나는 삼봉로~동쪽 종묘 옆길로부터 세운 공중보행로까지~남쪽 을지로 인쇄소·철공소 골목으로부터 명동길을 지나 다시 시청앞까지. ‘광장’은 서울로, 서소문공원, 청계천, 세운 공중보행로로 이어지며 지난 10년 서울의 중요한 도시계획들을 연결한다.
12.도심의 내러티브 연결
서울은 마치 차도로 잘린 블록-서로 다른시대·지향을 간직한-들의 콜라쥬 같다. 가령, 율곡로~종로~을지로~퇴계로를 경계로한 3켜: 북쪽 작은 노포들과 마당있는 도시한옥으로 대표되는 근대기 블록, 남쪽 명동의 장방형 상점과 철공소 골목으로 대표되는 개발성장기 블록, 중앙 대형 프라임 오피스로 대표되는 청계천변 2000년대식 도시정비 블록. 남북으로 뻗은 ‘광장’은 이들 블록들을 관통한다. 각 골목에서 ‘광장’으로 다시 ‘광장’에서 다음 블록의 ‘골목’으로 사람의 발길을 잇는다. 차도는 표면을 스칠뿐 블록을 끊어내지만 사람의 길은 연결한다. ‘광장’은 사람의 길을 중계한다. ’광장’은 도심의 각 쇼트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연결한다.
13. 도심 내 일상의 연결
현재 도시민의 일상 공간들은 엘리베이터로 이어진 층들의 경험처럼 서로 유리되어 있다. 나의 거주공간, 업무공간, 여가공간은 기능에 따라 분화된 도심의 각 영역들로 떨여져, 일상의 사이는 ‘이동’이라는 무의미한 소요로 떨어져 있다. ‘광장’은 이들 공간의 사이를 중계한다. 집을 나와 길과 ‘광장’을 걸으며 오늘의 도시락을 골라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 사무실 앞 ‘광장’에서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연결된 길을 따라 아이쇼핑을 하며 친구를 만나러 간다. ‘광장’은 일상 그리고 일상의 사이를 연결한다.
14. 근린 메트로폴리스
흔히 특정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영역-동네-로 인식하는 범위를 가리켜 우리는 ‘근린’이라고 한다. 그 인지범위 내에서 길은 일상의 장소로서 기능 이상의 의미로 채워진다. 본 제안은 서울 도심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중심가로의 인도 영역을 광장의 스케일로 확장하는 것이다. 길과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도시의 규모에서, 다시 하나의 삶의 장으로 펼쳐지는 도시, 근린 메트로폴리스를 꿈꾼다.